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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대왕 제4왕자 선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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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선성군파대종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3-31 10:53 조회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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定宗大王 第4王子 宣城君

     

()께서는 1392(태조 즉위년) 121일 조선국 2대 국왕이신 정종대왕과 성빈(誠嬪) 충주 지()[高麗國 文化贊成事 池奫의 따님] 사이에서 제4왕지로 태어나셔서 1460(세조 6) 7769세로 서거하셨다. 공의 휘()는 무생(茂生)이시며, 아버지 정종(定宗)께서 양위(讓位)하시고 인덕궁(仁德宮)으로 물러나시자 백성들에게 편안함을 베푸신 그 교훈을 잘 이어받아 아침저녁으로 문안(問安)하고 끼니 반찬을 살피시는 효성이 지극한 분이셨다. 당시의 왕자들은 사병(私兵)을 두고 서로 의심하여 실로 화()의 근원이 되기도 했으나, 공께서는 담박(淡泊)하고 조용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지키시고 권세(權勢)와 존귀(尊貴)함을 추종(追從)하지 않으시고 깊이 스스로 자취를 감추고 향기로운 나무와 꽃잎 속에서 풍류(風流)를 즐기시니 세종께서는 종친으로서 학문에 힘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서(海西)의 배천[白川]으로 귀양까지 보냈다가 얼마 후 본의(本意)를 살펴 알고 불러 관직을 되돌려 주셨다.

()께서는 1425(세종 7)에 종3품 중직대부(中直大夫) 정윤(正尹) 에 봉해지셨고,1432(세종 14)년에 정3품 원윤(元尹)이 되셨으며 1454(단종 2)에 정2품 중의대부 선성군(中義大夫 宣城君)에 봉해지셨다. 단종(端宗)과 세조(世祖)의 정권 교체기에는 세조와 가까이 지내셨다. 1454년 당시 수양대군(首陽大君)께서 경회루(慶會樓)에서 풍정(豐呈)을 올리는 진풍연(進豊宴)에 종친(宗親)으로서 의빈(儀賓), 문부백관(文武百官), 공신(功臣)들과 함께 초청(入侍)되셔 입시(入侍)하기도 하셨고 세조(世祖) 2(145611) 국초(國初) 오공신(五功臣)의 친자(親子)와 적장손(嫡長孫)들이 모여 충성(忠誠)을 맹서(盟誓)한 회맹록(會盟錄)에 수결(手決)까지 하는 결단(決斷)을 보이시기도 했으나 그 뒤부터는 국가가 다사다난(多事多難)할 때 스스로 물러나 권력자들과의 관계를 끊고 한가롭게 사시다가 좋은 명예(名譽)를 보존하고 일생을 마치셨다

군께서는 배위(配位)로 오천군부인(烏川郡夫人) ()[吏曹 參議 鄭宗誠의 따님 : 圃隱 鄭夢周 高麗 侍中의 손녀]와 안강군부인(安康郡夫人) ()[上護軍 金仲約의 따님], 평산군부인(平山郡夫人) ()[平山伯 候抵後孫]를 두셨으며 정()씨 부인과 김()씨 부인은 경기도(京畿道) 하남시(河南市) 덕풍동(德豊洞) ()의 묘소(墓所) 왼편에 합폄(合窆) 부장(祔葬)하였고 한()씨 부인은 공()의 묘소(墓所) 섬돌아래 잠들어 계신다.

1871(고종 9)에 정1품 숭록대부 영종정경(崇祿大夫領宗正卿)에 추증(追贈) 되시고 양정(良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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