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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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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1.png 시경蓍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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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5명종 20~1597선조 30

자는 사길士吉 혹은 원명原明, 호는 약산藥山. 영상 양원의 셋째 아들로 충신 정려 효행 순국자이다

진사에 합격한 후 세마로 발탁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공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특히 뛰어난 재질이 있어 8~9세 때부터 군자의 도度를 보였으며 15~16세 때에는 경전과 백가서에 정통해 당대 문학사들이 공의 집에 방문하여 장차의 경세지기로 추켜 올리는 정도였다. 어렸을 때 한문공漢文公의 <장중승전張中丞傳>을 읽은 뒤 눈물을 흘리며 지은 시를 보고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가 “우의寓意가 범상치 으니 후일 반드시 기절지사氣節之事가 있으리라.”고 예측하였다.

 

공은 임진왜란 당시 종사관으로 아버지 양원을 수행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왜군이 1597년선조 30에 재침했을 때 전투 도중 향년 33세로 순국하였다. 명장 류성룡柳成龍의 <서애집西厓集>에 공의 죽음에 관한 구절이 기술되어 있다.

유해는 거두지 못했고 종복이 유의遺衣로 혼하여 현재 충남 당진군 대호지면 송전리의 선고 양원공의 묘 곁에 의관장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증 승정원 좌승지에 올랐으며 1792년정조 16 충신정려를 명하여 포양의 은전을 하사받았다. 1993년 4월 충남 당진군 지방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군비郡費로 정려를 3년에 걸쳐 내삼문까지 완전히 보수했다.

 

진주 사림은 임진·계사·정유재란에 순절한 충렬제사에 대한 혼제를 매년 7월에 촉석루와 남강에서 지낸다. 진주晉州 백천사白泉寺 충열록忠烈錄에 상록詳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