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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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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1.png 문숙공文肅公 춘영春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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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3. 명종 18~1606. 선조 39 별세

자는 관지貫之, 호는 체소재體素齋, 시호는 문숙文肅이다(1910). 선성군의 4대손이고, 도성수의 증손이고, 의령도정 윤조의 아들이다. 1590년 (선조 23) 증광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추천을 기다리던 중 한림원 검열이 되었고, 후에 종계변무의 서장관을 지냈다. 1591년(선조 24) 서인西人 송강 정철松江 鄭澈의 건저문제建儲問題(정여립을 가혹하게 다룬 정철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동인들은 정철이 세자책봉을 주장하자, 당시 왕의 총애를 받고 있던 인빈김씨에게 정철이 세자책봉을 서두르는 것은 김씨소생인 신성군을 해치려는 음모라고 밀고, 김씨가 왕에게 알려, 왕이 정철을 비롯해 서인들이 좌천되거나 유배된 사건)에 연루되어 함경도 삼수三水에 유배되었다가 임진왜란으로 풀렸났다. 이 후 다난한 세상살이를 등지고 물러나 청주 심악산深岳山에서 살았으니 스스로 호를 ‘심악산인’이라고도 했다. 글과 시가 뛰어났는데 저서를 여러 권 남겼다.

 

<체소 문집體素 文集> 3권과 <사기요찬史記要簒> 7권, 그리고 <해동사부海東辭賦> 등이 남아 있다. 체소 문집 서문은 상촌桑村 신흠申欽, 좌의정 청음 김상헌金尙憲, 좌의정 기암 정홍명이 썼고, 발문은 영의정 잠곡潛谷 김육金堉이 썼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에 있다.

조선시대 사부문학辭賦文學:형식면에서는 운문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내용은 산문의 성격을 가진 특이한 문체文體 의 대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