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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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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1.png 준도遵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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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2(중종 27)~1548(선조 17)

자는 태중擇中. 선성군의 4대손이며, 봉사손이다. 춘산도정春山都正의 증손이며 충산부령豊山副令의 아들이다.

통정대부이다. 1561년 명종 16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1564년명종 19년 별시 문과 병과에 급제하였다.

 

1568년선조 1년 조모 승중상承重喪을 치른 후 구 에 따라 박사가 되고 1572년 선조 5년에 평안평사·형조좌랑·함경도사를 거쳤다. 1576년선조 9년에 공조·예조정랑을 역임하고 봉산군수를 거쳐 1578년선조 11년에 창성부사昌城府使로 승진하였다. 그곳에서 정치를 잘 했으므로 임지에서 1년을 더 근무하다가 1581년선조 14년에 교체되어 성균관 전적으로 있었다. 이 후 대구도호부사로 임명되어 근무하다가 1584년선조 17년 53세로 생을 마쳤다.

선성군 묘역 상후면에 묘가 있고 묘갈명은 월정月汀 윤근수尹根壽1537~1616가 지었으며 글씨는 남창南窓 김현성金玄成 1542~1621이 썼다.

 

공은 문장이 뛰어났고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교우가 깊었으며 과거문제를 함께 주관했다. 어느날 과거시험장에서 두 분이 같이 있을 때 천도책天道策에 대한 문제가 출제되었다. 응시생들이 시험관에게 제목의 뜻을 묻자 시험관이 말하기를 “이율곡과 리준도가 지금 시험장에 있으니 그들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응시생들이 앞을 다투어 찾아와 물어보느라고 대단히 혼잡하므로 공이 말하기를 “차라리 글로 한 장을 써서 보여주는 것이 좋지 겠는가.” 하니 율곡이 그것이 좋겠다고 말하였다. 마침내 두 분이 각기 첫머리와 말미를 나누어 써서 글 한 장을 만들어 그들에게 보였다고 한다.